* 2018년 11월, 다른 블로그에 게시했던 글입니다.
나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 놀이라는 것이 들이며 산이며 친구들과 누비는 것이 전부였다. 놀이터라고 해봤자 국민학교 한쪽 구석에 마련된 구름다리, 철봉, 그네, 모래밭이 전부였지만 어렴풋이 즐겁게 놀았다는 기억이 남아있다. 봄, 여름에는 시냇물에 사는 우렁, 미꾸라지를 잡아 아궁이에서 구워먹기도 했는데 놀이이자 간식 마련을 위한 ‘수렵’의 과정이었다. 가을이면 뒷산 밤나무에 무르익은 밤송이를 털기도 했는데 지금도그렇지만 그 당시에도 밤나무 주인에게 걸릴 때를 대비해서 항상 보초를 서는 친구가 있었다. 급하게 밤송이를 까다보니 가시에 찔리는 것은 다반사였고 나뭇가지 위로 올라간 친구가 흔들면서 떨어지는 밤송이가 등에 떨어지면 여기저기 신음소리가 가득했다. 짧은 시간 동안 ‘치고 빠져야’ 했기에 우리의 손동작은 무척 빨랐다.
비가 오는 날이면 고인 물을 첨벙첨벙하며 놀거나 진흙을 비벼 벽에 던지기도 했는데 우리 옆집에 잘 사는 아줌마가 우리 엄마를 홀대하는게 화가 났던지 그 집 벽에 진흙을 잔뜩 집어던져서 언성이 높아졌던 기억이 있다. 결국에는 우리 4남매가 벽을 닦았지만.
세월이 흐르고 일곱 살, 네 살, 두 딸을 둔 아빠로서 아이들이 놀아달라는 요청이 쇄도하지만 여러 가지 핑계로 마음을 다하기는 어렵다. 사실 기력도 줄고 아이들의 활동량을 따라갈 수 없다. 내가 어릴 때야 동네 아이들끼리 사고도 치고 땅바닥에 뒹굴기도 하곤 했지만 부모님이 같이 놀아준 적이 없었다. 나가면 아쉬운 대로 노는 방법을 터득해서 놀았기 때문이다. 조금 다치더라도 ‘조심했어야지’하는 핀잔이나 ‘그러면서 크는거지’하며 빨간약을 상처에 바르는 정도로 마무리되곤 했다. 하지만 요즘 세상은 옆집이라 해도 마냥 터놓고 친구처럼 지내는 분위기도 아닐 뿐더러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놀이터에 아이들 혼자 보내는 것조차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연일 매체에서 무서운 뉴스가 나오니 혼자 다녀와도 된다는 큰 딸을 그냥 보낼 수가 없었다.
나의 인생 계획을 정비하면서 퇴근 후 집에 도착해서 저녁 식사 전 1시간 정도를 놀이터에서 보내기로 다짐했다. 두 딸이 그렇게 좋아하는 놀이터이고 이 시절이 영원하지도 않을 것이라 생각하니 같이 논다는 것이 더없이 소중한 시간으로 여겨졌다. 내년에 재인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면 더 시간 맞추기가 어려워질 것이다.
항상 아이들을 통해 배우게 되는데 놀이터에서도 유심히 보면 재미있는 장면을 발견하게 된다. 새로 보는 언니, 오빠, 동생들과 신나게 놀고 떠드는데 3자가 본다면 꽤 오래도록 친구였다고 생각할 만했다. 그런데 “저 친구 이름 뭐야”라고 물으면 대답이 매번 비슷하다. “몰라”
어른이 되어가면서 노는 방법도 점차 잊게 되고 즐거움이 무엇인지 느낄 새 없이 중요하지 않은 것들에 몰두하게 된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중요하지 않은 것’들은 대부분 재미가 없다. ‘성적, 순위, 인사 평가 점수’. 대인 관계에서는 상대방의 ‘재력, 나이, 직업, 사회적 위치, 소유한 자동차 등’. 나열한 것 이상의 객관적, 주관적 지표로 인해 관계의 필요성이나 처우의 방법이 그때그때 달라지게 된다. 어렸을 때 가지고 있던 재미를 만드는 초능력의 자리를 엉뚱한 것들로 채우다보니 삶을 살아가는 방향을 잃게 된다고 느낀다. 그래서 요즘 내 주변 사람들의 질문은 항상 이렇다. “뭐 재미있는 일 없어?”
영화 ‘가타카(Gattaca)’는 미래를 배경으로 유전자에 의해 계급이 정해져 자신의 꿈에 상관없이 장래에 할 수 있는 일들이 결정된다. 주인공인 동생 빈센트 프리맨은 좋은 유전자를 타고나지 못해 선천적으로 체격이나 질병에 취약하다. 하지만 우주 비행사를 꿈꾸며 자신의 ID를 나타내는 혈액, 소변, 지문 등을 우성의 유전자를 가진 제롬 유진의 것으로 세탁하여 제롬 행세를 하고 다닌다. 빈센트 프리맨의 형인 안톤 프리맨은 우성의 유전자를 갖고 있어 형사로 동생을 맞닥뜨리게 된다. 형이 동생의 정체를 알게 되었을 때 바다에서 수영 시합을 하게 되는데 열성 유전자의 동생에게 지게 된다. 그때 형 안톤이 묻는다. “너무 멀리 와서 돌아갈 수 없을거야” 주인공인 동생 빈센트가 말한다. “나는 돌아갈 힘을 남겨두지 않았기 때문에 형을 이긴거야”.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을 지켜보면 쉼없이 뛰고 구른다. 그때만큼은 집에 가서 숙제를 해야한다거나 해가 지는 것에 대한 걱정은 접어둔다.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그렇게 열성으로 노느라 에너지를 소진하면 파김치가 되어 밤에 일찍 잠에 든다. 마치 영화 ‘가타카’의 주인공 빈센트처럼. 하지만 나는 내가 하려고 하는 일에 온전하게 나를 바치지 못한다. 또다른 일이 있으니 그만큼의 에너지를 아끼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마치 빈센트의 형처럼 좋은 유전자와 조건을 타고 났음에도 너무 계획적인 탓에 혼신을 다하지 못한 격이나 비슷하다. 나름 앞날에 대한 대비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현재에 대한 소홀함으로 표현될 수도 있다. 앞날은 어차피 아무도 모른다. 지금 당장 저 세상으로 갈 수 있는게 인생인데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현재에 충실하지 않는다면 또다른 우려스러운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반성해본다. 우리 재인이, 라임이를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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